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이집트 (문단 편집) == 의학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00px-Edwin_Smith_Papyrus_v2.jpg|height=3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gettyimages-182131891-594x594.jpg|height=300]]}}} || || '''{{{#A0522D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 고대 이집트에서 가장 권위가 높았던 의학 지침서들 중 하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외상 치료 관련 의학서이다.]}}}''' || '''{{{#A0522D 치료받는 이집트인}}}''' || 이집트의 의술은 다른 나라에도 널리 퍼질 정도로 경지에 다다른 수준이었다. 말기 왕조 시대 [[페르시아]]의 황제 [[캄비세스 2세]]가 파라오에게 제 병을 고쳐줄 의사를 좀 보내달라고 부탁했을 정도. 기원전 440년에 이집트를 방문한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도 방문 후 이집트의 의술서를 베껴 갔고, [[대 플리니우스]] 역시 이집트의 의학에 대해 논한 바 있다. 그 외에도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 헤로필로스, 에라시스트라투스, 갈레니우스 등 많은 저명 학자들이 아멘호테프 시절 만들어진 이집트의 의학서를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이집트의 의술서는 몇 없으나, 그나마 에베루스 파피루스,[* [[피임]] 방법, [[당뇨]] 치료, [[기생충]] 제거 등의 치료법이 있다. 파피루스에 의하면 가죽에 대추야자즙, 꿀, 아카시아 등을 묻혀 여성의 질 내부에 넣어 피임을 하라고 했다. 당뇨의 경우 딱총나무 열매, 식물 섬유, 우유, 맥주, 오이꽃, 대추야자 등을 이용해 약을 제조했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 허스트 파피루스, 런던 의술 파피루스 등이 보존되어 내려오고 있는 형편이다. 특히 이중에서 에베루스 파피루스는 877개의 처방전에 대해 자세히 수록하고 있고 심지어는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외과 수술에 관한 내용도 들어 있다.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의 경우 동물, 식물, 광물 등 다양한 천연 재료들로부터 약물을 추출해내는 방식을 설명하고 있으며, 관찰과 처방, 후속 치료 등 과학적인 치료 방법이 나와 있다. 고대 이집트 의학서들 중 가장 대표적인 서적이었던 '에드윈 스미스 파피루스'의 경우 48가지의 질병 증상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치료법을 소개하고 있다. 파피루스에 의하면 의사는 환자를 보고 그 증세를 '치료할 수 있는 병',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는 병', '치료가 불가능한 병'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야 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우에 해당할 경우 지체 없이 치료를 하거나 손을 쓰라고 나와 있지만,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났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신에게 기도하는 것만이 답이라는 내용이 있다. 그 외에도 파피루스는 피부가 긁히거나 찢겨 상처가 났을 경우에는 일단 [[꿀]]로 소독한 후 생 고기를 얹어 피가 흐르는 것을 멈추게 하라고 나와 있다. 이후 피부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실과 바늘로 상처를 꿰메고 붕대를 감아 치료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두개골을 쪼개 머리 내부의 압력을 낮추는 천공 수술에 관해서도 상세히 나와 있는데, 이는 1,000여 년 후의 히포크라테스 시절보다도 발전된 면이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뇌]]를 다치면 몸의 일부분에 마비가 온다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척추 골절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오거나 영구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고대 이집트 의학.jpg|width=100%]]}}} || || '''[[콤 옴보 신전|{{{#A0522D 콤 옴보 신전}}}]] 벽면에 새겨진 고대 이집트의 수술 도구들.''' || 이집트 의학은 미라 제조를 통해 발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썩기 쉬운 내장 기관들을 모조리 들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부학과 생의학 등이 전폭적인 발전을 거듭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집트인들은 만일 시신이 온전치 못하다면 고인이 완전한 모습으로 부활하지 못한다고 믿었기에 시신의 일부분이 훼손되어 있을 경우 금속이나 나무 따위로 모형을 만들어 붙였다. 코나 발가락, 손가락, 다리 등 그 부위도 가지각색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인들은 이 기술을 단순히 시체를 염하는 데에만 사용하지 않았다. 전투나 사고로 신체 일부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하여 나무나 금으로 의족, 의수 등을 만들어 붙여주었고, 심지어 한 기록에는 황금으로 한 귀족의 코를 만들어 붙였다는 내용도 전해져 내려온다. [[치의학]]도 나름 존재했다. 물론 외과의 한 부분이었고 독창적인 의학 분야로까지 나아가지야 못했지만..... 이집트는 모래가 많은 사막 지방에 위치하고 있어 음식을 씹을 때에 자연스럽게 모래가 같이 섞여 들어가는 경우가 잦았다. 허구한 날 그런 일들이 반복되니 이집트인들의 치아 상태는 좋지 못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의학이 발전한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이집트인들의 치과 기술은 좋은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왕국 시절 [[람세스 2세]] 역시 말년에 극심한 [[충치]]로 고통을 받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좋은 치료를 받았을 파라오마저도 충치 하나를 제대로 해결치 못했으니 고대 이집트 치과의의 기술이 썩 그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 치과의사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치과 치료법은 바로 이빨을 뽑아버리는 것이었다. 종종 멀쩡한 생니를 뽑아버리는 경우도 많았으니 당연히 막대한 통증을 수반했고, 의사들은 이 고통을 달래기 위해 마약 [[아편]]을 활용했다. 이집트 유적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발치 도구가 발견된 적이 없으니 당시 이집트인들은 정말 엄청난 고통을 견디면서 이빨을 뽑았을 것이다. 참고로 충치는 꿀이나 [[대추야자]]처럼 다디단 음식들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파라오나 가지던 질병이었다. 평민들은 그런 단 음식들을 비싸서 사먹지도 못해서 충치가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